2017. 11. 7. 15:15

원래 심각하게 도면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는
오토캐드가 가장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료로 쉽게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으로는 스케치업이 있지요

스케치업은 www.sketchup.com/ko 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근데 3차원 도면까지 필요한 건 아니고
그냥 평면도만 그렸으면 좋겠다는 분들께는
스케치가 좀 무겁고 어렵죠

이런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벽을 그리고 문을 뚫고 창문 위치를 잡고
가구를 배치하는 정도의 작업이 가능한
무료 프로그램 3가지를 소개시켜드리려고 합니다

2가지는 웹기반이고
1가지는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 그럼 가장 첫번째로 소개해드릴 프로그램은
웹기반의 플로어플래너입니다
https://floorplanner.com/

셋 중에 가장 간단하고 쉽습니다

사이트에서 가입하고 로긴하면
간단히 사용 가능한데요
제가 만든 프로젝트를 하나 지우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다시 하나 만들어서
같이 간단한 방에 문과 창을 달고
가구를 그리는
벽을 그리고
사이트에 있는 문과 창문을 배치하고
가구를 옮겨주면
자, 끝입니다
간단하죠?

간단히 무료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제약이 있습니다만
간단간단하게 방 구조를 그리고
거기에 가구를 배치하는 작업을 하기엔
충분합니다

3차원으로 변환시켜 볼 수도 있으니까
공간감이 없어도 이렇게 바꿔서,
돌려가면서 보면
어느정도 감각을 익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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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omside
2017. 11. 2. 13:45

 

대부분 컴퓨터를 사용하면 어떻게든 사용하게 되는 프로그램이 오피스입니다
특히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정도는 한번쯤 열어보고 편집하게 되는데요
오피스 프로그램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대체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선 거의 무료나 번들로 제공되는 추세이긴 해도
아직도 데스크탑에선 MS오피스는 유료프로그램입니다

구글닥

첫째로는 웹기반인데요 웹기반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구글닥 입니다
물론 네이버도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곤 하지만 제가 써본 것은 구글닥 뿐이긴 합니다
장점은 웹기반이다보니 제가 어디에 있든 내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작성하던 문서를 열어보고 편집할 수 있고
또 바로 지메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엔 대부분 스마트폰을 쓰는지라 기본적으로 지메일 하나쯤은 갖고 있기도 해서
가입에 대한 장벽도 높지 않은 편입니다

http://doc.google.com

리브레 오피스

역사와 전통이 꽤 긴 MS 오피스의 무료 대체 프로그램인 리브레오피스입니다
원래 리브레오피스는 오픈오피스라고 하는 오픈소스 오피스에서 이어져온 프로그램입니다
MS 오피스에 비해서 가벼운 용량이지만 실제 오피스에서 하는 기능들은 모두 사용 가능하고
심지어 엑세스나 프로젝트 같은 대중적이지 않은(?) 영역까지도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점이라면 여전히 오픈소스 기반이라서 개발자들의 집단지성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떤 영역에선 MS 오피스보다 더 훌륭한 기능도 있다곤 하는데
일단 전 기본적인 임프레스나 라이터만 쓰다보니 그런 고급기능은 활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http://www.libreoffice.org/

한국어 사이트
http://ko.libreoffice.org/

 

Posted by Roomside
2017. 10. 10. 20:00

안녕하세요
이번에 다루게 될 주제는
개봉을 앞둔 영화 대장 김창수에 대한 것입니다
김창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본명입니다

영화 대장 김창수는 제작 발표회때
이런 질문을 받았었습니다
'군함도의 역사 고증 논란이 있던 것 처럼
이번 영화도 고증 논란이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대해 감독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잠시 답변 클립 보고 가시죠

영상클립 보러 가기

대충 텍스트로 옮기자면
"역사를 소재로 만드는 영화에선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재구성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재구성이 없으면 역사 다큐멘터리일것이다
알고 재구성을 하는게 관객분들께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고증 논란을 겪는 이유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 있습니다
바로 치하포 사건인데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와 당시에 신문, 그리고 법정 기록이
모두 상이하고
이 사건으로 김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금방 풀려난
주막주인 이화보의 증언도 김구선생의 증언과 다릅니다

일단 백범일지에 나온 이 사건과 이후 벌어진 사형 사면의 상황을
간략히 인용하거나 요약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896년 병신년  2월 하순 치하포의 어느 주막에 묵게 된 김창수는
거기서 단발을 한 장연사람 정씨라는 수상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장연 사투리가 아닌 서울 말투를 쓰고 있었고, 흰 두루마기 밑으로 군도를 숨긴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김구의 생각에 보통의 일본 상인이었다면 저렇게 변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필시 삼포오루(미우로 고로 - 명성황후 시혜범)이거나 그 일당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왜군을 여기서 죽이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판단하게 되어
그날 새벽에 그와 격투를 벌여 그가 가진 칼로 살해하고 그 피를 마시고 얼굴에 발랐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의 소지품을 뒤져 그가 육군중위 토전양량(쓰치다 죠스케)이며 600냥을 찾아
선창 값을 치르고 남는 돈은 주막 주인에게 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시켰다고 합니다
그 후 시신을 물 속에 던져넣길 지시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를 죽였노라' 라는 포고문을 써서
큰 길에 붙이고 유유히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관가에서 잡아가고 옥에서 주리틀기를 당하고
신문을 당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고종황제의 사형 면제 전화를 통해 극적으로 사형을 면하게 되었고
옥살이 2년만에 탈옥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기구한 젊은 때' 파트의 내용이며 백범일지 1권의 초반부 대부분을 장식하는
아마 영화의 주요한 흐름은 이 백범일지에 기초해 흘러갈 것으로 보입니다
공식 자료로 제공되는 사전 줄거리 내용을 보자면 약 2년간 옥에 수감된 시기의 김창수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라고 예상됩니다

감독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백범일지의 이야기에 나온 인물들 중에
몇 몇을 혼합시켜 송승헌이 역을 맡은 악역 강형식을 탄생시키고
어린 시절의 스승과 옥중에 만난 스승을 결합시킨 가상의 인물인듯 한 인물들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치하포사건은 꽤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기록은 교차검증을 통해 그 신빙성을 검증받게 되는데
치하포 사건에서 피해자가 된 쓰치다 죠스케의 경우
백범일지를 제외하면 어느 문건에서도 그가 '일본 군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건이후 김구선생께서 붙잡혀 조사받는 와중에도 그를 일본군인으로 인식했다는 진술은 하지 않습니다
쓰치다에 대한 기록은 일본 외무성의 공사관 기록으로 나오는데 일본의 상인으로 나옵니다

여전히 갑론을박중인 사건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그를 '일본 군인'이라고 볼 근거는 백범일지 외엔 없습니다
당시의 공문서와 조서, 신문 기록은 모두 그를 상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김구 전문가로 알려진 도진순 교수 등은 이미 199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쓰치다가 상인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여기서는 좀 더 나아가 외무성 자료에 그가 '계림장업단' 소속 상인이었다고 합니다
즉, 학계의 입장은 민족 감정과 달리 희생자는 민간 상인이었다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물론 백범일지에 쓰여있듯 평범한 상인이라면 일부러 변복/변성명을 할 리가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
시기적으로는 명성황후 시혜가 있고 바로 다음해였습니다
일본인들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 역시나 하늘을 찌를 시기였던지라
변복/변성명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살행위나 다름없기도 했죠
거기다 백범일지의 치하포 사건 직전까지의 이야기는 단발령에 반발해 반일감정이 고조되었고
삼남지방에 의병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적혀 있는지라
당시의 조선땅에서 일본 복식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백범일지에서 입증해주는 내부 모순이 되겠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최근인 2003년 컬럼니스트인 김완섭씨가
'김구 선생은 민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 왕조의 충견' 이란 내용의
문건을 배포했다가 대중적 비판을 받고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근데 이 기록도 주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판결문에서 김완섭씨가 명예훼손으로 인정받은 부분은 '일본인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도피했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
이며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했다는 부분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나 명예훼손은 아니다' 라고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것' 이란 부분에서 이 부분이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반박할 명확한 근거가 없음을 인정한 꼴입니다

물론 김구선생께서 백범일지를 처음 기록했을 당시의 나이는 51세입니다
치하포 사건이 벌어지고 한참 뒤의 일인지라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고, 사건에 대해 자기 중심적 윤색이 많이 가해졌을 수 있긴 합니다
실제로 당시의 고종황제가 특별 사면으로 김창수의 사형을 면하게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건은 '인천에 전화가 놓여 극적으로' 벌어진 사건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주막주인의 방면 역시도 김구선생이 '저 사람은 무고하니 풀어주라'라고 해서 풀려났다는 이야기도
당시의 조서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백범일지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쓰치다 죠스케는 끝까지 일본의 '밀정'이었을겁니다

이것 또한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닙니다
우리도 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독립투사들은 밀정이었거든요
실제 김구의 임시정부 역시도 그런 밀정을 내/외부에 많이 두었기도 합니다
암살에 나오듯 반역자라고 이해되는 인물들에 대한 백색테러도 많이 했구요

 

이건 한국만이 아니라 또한 일본의 미디어에서도 이런 내용을 다루기도 합니다
가깝고 대중적인 예로는 바람의 검심에서
켄신의 젊은 시절 토모에와 숨어지낼 시기에 위장신분이 약장수 였지요
그리고 토모에는 켄신에게 접근하기 위한 밀정이었구요

 

이 사건은 어떻게 보아도
일본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임이 좀 더 우세한 학계의 의견이겠습니다만
김구선생의 생각 안에서는 아마 그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 민간인이 일본의 밀정이었다고 생각하셨을거라는 것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이 사건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공개된 줄거리부터 홍보자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9월초에공개된 줄거리 자료에서는
'189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옥소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감동실화' 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 수정된 자료를 보더라도
포스터에서는 여전히 '나는 그 날 짐승 한마리를 죽였다' 등으로 자극적이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하는 느낌이 드는지라
우려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Roomside
2015. 11. 11. 11:34

마션도 개봉했고
이젠 극장에서 끝물이 되어가는 참이고
엑소더스는 개봉한지 1년이 되어가는 상황인데
이제야 엑소더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뭐 매번 그렇지만
열심히 기독교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이 보기에

상당히 이상하다고 보이고

또 몇몇분들은 여기에 공격적인 댓글을 달 것도 예상이 됩니다만

어쨌든 제 개인적인 감상 나갑니다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는

개인적인 감상으론

그의 신앙고백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야웨에게 우호적이라고 봅니다

강압하는 신이 아닌

동료이면서 관찰자인 인격신을 그리고 있으며

애굽으로 돌아와 게릴라전을 펴는 모세의 모든 노력이 실패하자 등장해

재앙을 통해 일하는,

결국 인간의 모든 노력이 아닌

신의 의지가 출애굽을 이끈다는

신앙고백이죠

딱히 신비롭게 나일강물이 붉어지는게 아니라서
혹은 그 이후의 기적이 자연현상의 연쇄반응처럼 나타나서 헷갈릴텐데
원래 신의 기적이라는게 항상 초자연적이고
설명 불가능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가장 마지막 장자가 죽는 기적은

자연현상의 연결고리를 벗어난

신의 행동이라는 것 말곤 설명이 어렵습니다

이것만큼 극명한 신앙고백이 있을까 싶은

아주 신앙적인 고백이 넘쳐나는 영화의 말미에

모세와 야웨는 법을 정합니다

그리고 시크한 야웨가 모세에게 말하길

"니가 죽어도 이 법은 남을거다"

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우리는 종종 개인 개인이 수양을 잘 쌓아

공덕을 이뤄 믿음을 키우면

뭔가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지만

실상은 그런거 읍습니다
"신앙으로 극~뽁!" 같은 개인의 성공 주의에서 도망치세요
혹은 성공 대신 거룩을 추구하라는 이름으로 살짝 비튼 변주도 있습니다만
어차피 거룩해지면 성공이 따라오는 구조를 차용하는지라
그런거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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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omside
2015. 11. 2. 10:56
물론 그 전에도 창조과학이 왜 틀린건지 제 짧은 가방끈으로 대략적으로 설명을 드렸던 글을 쓰기도 했었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대세를 바꾸는 일은 역부족이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가 제 생각을 정리하고 괜히 또 짤막하게 던지면 오해할 소지가 생기는지라 길게 풀어 쓰는 장황한 가증력 쩌는 글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주제는 "자연과학의 결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야웨라는 신을 창조주라고 믿는 이들의 본분 중 하나이다" 입니다
물론 역시나 그냥 제 주장이지 어디에 어떤 근거를 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하면 이번에도 딱히 어떤 근거를 들어드리긴 어렵습니다
창조과학회의 활동만이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겨보니 길다면 길게 짧다면 짧게 경험을 쌓은 제 판단으로 기독교(내지 맹목성을 가진 종교)와 과학, 의학, 심리학의 충돌은 보통 현재까지 밝혀진 그리고 연구로 알아낸 자연적 현상을 경전이 말하는 바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창조과학만을 예로 들어봐도 창조과학회가 거부하는 과학 영역은 그야말로 방대합니다 생물학(공룡, 진화), 천문학(빅뱅), 지질학(화석과 지층) 크게 몇 분야가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어떤 동물의 무엇은 진화가 허구라는 증거이다 이 지층의 모양은 대격변의 증거이다 별의 거리 측정인 광속은 어떤 경우엔 어떻게 변해서 우주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등등...
그리고 이런 예시들은 생물학적, 의학적, 심리학적 판단이 필요한 동성애의 영역에서도 장애의 영역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전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입니다 그렇지만 전 이렇게 이해합니다 "경전을 적절히 해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야웨가 창조주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저는
창조주가 깔아놓은 혹은 제시한 수많은 코드들과 암호를 자연속에서 찾아내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신앙이 있건 없건 그 자체로 가치있으며 과학이 발견한 그 현상, 분석들은 그것이 무엇이건 창조주가 깔아놓은 코드와 암호이지 경전에 반대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지라 "자연과학의 결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야웨라는 신을 창조주라고 믿는 이들의 본분 중 하나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은겁니다
그런 코드와 암호들을 바탕으로 경전의 해석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어차피 우리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과학을 통한 해석의 격변을 이미 겪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육안 관찰로도 마찬가지구요 다른 과학적 발견을 통해 또 해석이 바뀌면 안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연에 깔린 암호와 코드를 적극 활용해 경전을 해석하길 권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지식놀음으로 보일거 압니다 또는 무식한 기독교인이란 비판에 대해 타협으로 보일 것도 압니다 근데 그런 주장은 안믿는 사람들에게 잘보여야겠단 의도를 가진 타협도 아니고 니네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지식놀음도 아닙니다
고고학이든 천문학이든 지질학이든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의학이든 성경이랑 다르단 이유로 인간의 학문이 틀릴거란 이야길 할만큼 허술하거나 결과가 오락가락하고 자의적 해석이 넘쳐나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런지라 성경과 학문적 발견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로 접근해야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양자택일로 가기 시작하면 학교에서 학업을 위해 배우는 공부의 점수를 위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양보해선 안되겠죠
얼마 전에 마주한 학교에서 진화를 배우는데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 혼란스러워 하는 아이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게 된다면 아이는 성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성경을 위해 학업을 일부 포기해야 합니다
결국 아주 단순한건데요 학문적 발견들을 수용하는 성서 해석이라는 것은 지식놀음도 남을 위한 타협도 아닌 제 자신과 제 자녀들이 두개의 코어를 돌리면서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한 방편인겁니다


Posted by Roomside
2015. 10. 29. 15:10
1. 원죄론 뒤집기 원죄는 과연 동물적 본성에 있는가? 이제 슬슬 길게 쓰는 일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 익숙해지기 쉽지 않네요 어쨌든 이번 소책자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의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딱 동의되지 않지만 책에 나온 “인간은 육영혼 /동물은 육혼” 공식에 비춰보자면 원죄의 영역은 영에 있다고 해야 옳을겁니다 인간이 원죄를 갖고 있으며 피조물이 이것으로 신음한다면 원죄라는 요소는 더더욱 동물적 본성이 아니라 인간적 특성이 원죄의 요소라고 봐야 하지않나 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언어적 특성, 사회적 습성, 지능, 기록에 대한 욕구 등... 그렇다면 왜 인간적 본성을 죄라고 하고 그 유명한 칠거지악이라는 것도 나오는걸까요? 동물의 성욕 식욕 수면욕들은 죄가 아닌데 왜 음란 탐욕 나태는 칠거지악에 들어갔을까요?

2. 동물적 본성의 중립성

나태를 예로 들자면 쉬려는 욕구는 편해지려는 욕망의 발현입니다

근데 실은 나태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역으로 과로사 라는 것을 방지하는 좋은 방편이죠

또한 편해지고자 하는 욕구는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어왔습니다

탐식 역시 그 자체로 죄는 아닙니다

식탐이 없어지면 생존이 불가능하거든요

거식증이라는 것을 보면 적절한 탐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색욕도 그 자체는 인류가 대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왜 인간들에게 죄로 변했을까요?

전 이런 동물적 본성이 그 자체로는 선악판단의 중립적 요소이나 인간적 특성에 힘입어 죄가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서 보자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을겁니다

선악과를 통해 알게 된 무엇이 원래는 죄가 아니었던 육적 본능을 죄의 영역으로 갖고 왔으며
더 나아가 역설적이게 육적 본능의 극단을 추구하며 육적 본능이 죄라고 인식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걷어내고 보자면 인간의 지능과 사회적 습성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즉 동물적 본성 자체가 아니라 인간적 특성이 인간을 악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의도적으로 지능을 퇴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며

사회를 벗어나 생존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전 원죄라는 것도 이와 같이 이해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죄에 대해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겠는데요...

3. 사회적 원죄, 관계

앞서 말했듯 전 이 부분에서 원죄를 바라보는 관점을
인간의 특성과 떼어낼 수 없다고 했으며

그 관점 중 아주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이 사회적 동물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했음직한데

전 이런 것을 "사회적 원죄"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전 21세기 서울에 사는 기혼 남성이라서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집에 가는 골목에 앞서 가는 여성의 위협이 되고

전력을 소모하면서 지방의 발전소와 송전탑이 세워진 지역 주민의 편의를 갉아먹으며

가족들과 편한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환경을 좀먹고

스마트폰을 쓰면서 반도체를 제작하다 백혈병에 걸린 누군가의 발병원인에 일조하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돈과 공력을 낭비하기도 하고

상하관계가 고착되도록 누군가를 부려먹기도 합니다

미팅을 나가 카페에 앉아 불공정 커피 무역의 피해국가 노동자의 등골을 휘게 만들기도 하고

밥을 먹으면서 배부름을 넘어서는 수준의 식용 동물 도축이 일어나는 것에 일조하기도 합니다

열거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제가 그렇게 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그저 제가 이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건 제가 귀농생활을 한다고 해도

정도의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제가 존재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각계각층에 미치는 악영향입니다


의도를 통해 나타나는 죄라는 영역으로 들어가자면

그 부분은 원죄가 아니라 그냥 악의 경향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만

이 역시도 사회적 관점에서, 위에도 잠깐 썼듯 "상하관계가 고착되도록"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길에서 고양이를 괴롭히는 초등학생의 경우도 고양이가 하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을이 죽어나가더라도 일은 해야 한다는 갑의 인식도 을이 하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지위를 이용해 추행을 하게 되는 교수(or 목사, 정치인, 선생 뭘 대입해도...)의 인식도 피해자가 하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게 마련입니다


혹은 역으로 내가 열등감이 있으니 뭉개주겠다는 식도 가능한데

이 역시도 "사회적 상하관계"가 불러오는 비극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문장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죄를 관계 속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관계의 수평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보면 예수와의 대화 안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언지를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새번역, 막 12:28-34)))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새번역, 마 25:37-40)))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새번역, 요1 4:7-12)))


전형적인 용두사미이지만

구원의 길도,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이 발현되는 것, 그리고 계명의 가장 큰 것 역시

나 하나의 깨끗함, 정결한 예배, 순전한 찬양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본 적이 아무도 없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역시도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랑하지 못할 사람, 사회에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나타납니다

관계의 수직적 구조를 깨고 수평적 구조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겁니다


Posted by Roomside
2014. 8. 25. 11:57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절박하면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옳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유가족이 원하던 것은

아주 간명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입장은 아주 간명했습니다

사고 극 초기에는 "구조 활동에 적극적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쇼"

사실상의 구조 실패 이후에는 "구조가 왜 소극적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행동 역시 아주 간명했습니다

"책임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의 발로에서 기인한 것들이지요


그래서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특별법 제정"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주 절박하죠 그리고 그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도 잘 아는 상황이라면

다른 모든 이슈들을 쳐내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옳습니다


100% 동의하진 않지만

그리고 꿘의 시선에선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누군가 지적하더군요

김영오님을 긴급후송하려고 하던 분 중 한 분의 조끼에 쓰여진 문구는

"송전탑 반대" 였다구요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이것 역시 그냥 비꿘의 시선에선

"뒤에 불온한 세력이 있다" 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사진입니다


"노동자여 단결하여 저들에 대항하자" 라는 구호가

"특별법 제정"이라는 이슈에서

필요한가, 도움이 되는가 라는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데

그닥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쁜 것은 아닌데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물타기가 될 수 있다고도 보니다


물타기라고 하는게 별거 아니고

비본질로 본질을 흐리는 행위를 물타기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특별법 제정이라는 문제에서

지금 당장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여,야,유족 의 삼자 협의체 구성" 과 "박근혜 면담"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박근혜 퇴진"은 목표달성에 도움이 되는 구호가 아닙니다

그냥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이슈를 잘 만나 "물타기"를 하는거죠


그렇다면 피아 구분에서

아군이라고 보이는 쪽의 본질 흐리기는 최소한 없어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Posted by Roomside
2014. 7. 2. 01:00

루시퍼인가 계명성인가?
- 현재 널리 통용되는 역본 중에 루시퍼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역본은 대표적으로 KJV입니다

그 외의 현대적 역본과 히브리 원어를 바탕으로 해석한 버전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계명성"내지는 "새벽별" 등으로 번역되고 있지요

http://en.wikipedia.org/wiki/Lucifer#Lucifer_or_morning_star

루시퍼는 라틴어 루치페르(or 루키펠)에서 나온 말이구요
어원적 의미로 Luxxo + Ferry 입니다
빛을 전달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그 당시 라틴어로는 금성을 지칭하는 단어인데요
광명한 천사, 혹은 종종 예수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한 때 유투브에 떴던 카톨릭 미사에서 루시퍼를 찬양한다는 놀라운 영상
그 미사곡은 실은 성공회나 정교회, 루터교 에서도 통용되는 미사곡이고
아주 널리 거기 나오는 "루치페르"가 "예수"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루시퍼는 사탄이 되었는가?
옛날 옛날 제롬이라는 분이 라틴어 역본을 만들 때
이사야 서에 나오는 히브리어 헬렐(금성)을 라틴어 "루키페르"로 번역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주후 406년 제롬에 의해 완성된 벌게이트 버전부터 그러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외경이 붙고 악의 존재에 대한 실체를 갈망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붙어서
뿌리깊은 초대 기독교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히브리 원어를 베이스로 하는 버전들은
대부분 "계명성"으로 수록하고 있는거구요

여튼,
그래서 지금 님들이 철석같이 믿는 사탄은 루시퍼 라는 공식이 나오게 됩니다

(문맥상 이사야서에 딱 한번 나오는 루시퍼라는 단어는
"새벽별" 내지는 "계명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또한 바빌론 왕국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만.....)

뭐, 님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아주 뿌리 깊은 문학적 상상과 위경들이 더해져
그리고 정경에서 님들이 말씀하신 누가복음, 이사야서, 고린도 후서 어디서도
확정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추측하게 만드는 단서들일 뿐이지만
추측으로도 이 낭설은 굳어져 가니까요

밀턴의 실낙원이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루시퍼"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죠

참고로 라틴어를 아는 분들은 이 영상에 나오는 3분 54초 이후의 자막

"이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내용상 적그리스도를 의미한다"에서 빵 터진다고 합니다...;;;

Posted by Roomside
2014. 6. 9. 01:22

들어가면서


갑자기 타임라인에 동성애 관련 포스트가 많네요

시류에 편승하여, 과거 정리했던 글 하나 올립니다

그에 관련하여

그렇다 아니다로 보자면 성경은 일단 그렇다고 말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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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예로 드는 소돔과 고모라는

오히려 좀 모호한 구절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문제보다는 강제로 관계를 가지려는 것이 더 부각됨이 옳거든요

그리고 그 밖의 죄들로 인해서도 이미 멸망을 언도받은 상태입니다


레위기 20장에 나오는 성에 대한 법률들이 명시되는데요

오히려 여기에서 나오는 구절은 명확하게 어떤 것이 죄가 되는지 이야기합니다

근데, 여기서 동성애라는 것이 아주 특별한 죄는 아닙니다

동물과 응응하는거라거나 자기 엄마(아빠)랑 응응 하는거, 간음하는거,
장모랑 응응, 강간......;;;

뭐...여튼 다른 성적인 범죄랑 같은 무게로 봅니다


뭔가 좀 이상하죠?


신약에서 동성애에 대하여 가장 명확하게 죄라고 거론하는 것은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것인데, 이건 그 당시의 로마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럼 그 시대의 로마 상황을 좀 알아야 하는데요

로마라는 국가가 동성애를 아주 많이 행했구요

그게 화동이라는 이쁘장한 남자 아이부터 청년까지를 남자가....(으악!)

뭐 그런겁니다


일단 시대적 상황이 그런지라 이 편지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튼 성경을 그냥 그대로 보자면 동성애는 죄가 맞는데요

다른 성적인 범죄랑 별반 다르지 않은 그렇고 그런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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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성경 이야기구요


좀 해석을 붙이자면 이렇습니다

이렇다면 동성애도 다른 모든 범죄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행위 자체보다는 중심을 봐야 합니다

그것이 "과한 쾌락" (바울은 음욕이 불일듯 일어 라고 표현하네요)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죄인거죠

가령 로마시대의 화동이란 존재가 스스로 결정권이 없이
강제로 응응 당하는 거라면 
그 화동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라는겁니다


이건 누군가가 말한 동성색이랑도 연결되는건데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적인 부분에서 "과한 쾌락"으로 연결되는 것이
죄로 이어지는거라고 보는게

기독교적 시각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범위의 동물, 부모, 근친, 강간,
뭐 대부분 그런 범주로 보시면 무리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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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으로 들어오면 이게 더 복잡해지는데요

과연 선천적인 동성애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전 그게 100에 10이든 1이든 있다고 한다면

동성애라는 부분은 죄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역시나 동성애와 동성색으로 이야기 해도 되는거긴 한데요,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죠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에 그런 결함이 있을 수 있냐고 물으실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친절하게도 양쪽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을 가끔 만납니다

네, 물론 그렇다면 머릿속의 성정체성과 육체의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이
분명 존재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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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뭔가 복잡합니다

성경에선 분명 죄라고 명시했는데

현대적으로 보면 선천적인 동성애자라는 것도 충분히 존재 가능하고

그렇다면 이걸 하나님의 죄라고 물어야 하나....


전 이걸 다수이자 강자 그룹인 이성애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거부감이 들 수 있고, 달라 보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지만

다수와 소수, 강자와 약자가 모두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나름의 창조의 섭리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Roomside
2014. 5. 19. 18:41

며칠 전 창조과학회와 관련되어
한 유명 목회자가 그랜드캐년의 창조과학회 견학 패키지를 체험하고
그에 대한 간증을 써주시는 바람에

창조과학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창조과학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넘어서서

창조과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며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에 따라 제 블로그에도

창조과학에 대한 문제들을 지적하는 글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그 전엔

그냥 "성경을 과학 안에 우겨넣지 말라" 정도로
아주 간단히 통하던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집단의 힘, 유명한 목사님의 힘은 크네요


1. 창조 과학은 창세기가 아닙니다
성경 66권 중 첫 장이자 세상의 시작을 묘사하는 창세기는

경전의 시작을 알리는 권입니다만

창조"과학"의 키워드는 성경 해석에 있습니다

"과학"을 인용해 하나님의 창조를 증명한다는 것인데

세상의 시작, 창조라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정확한 규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세상이 시작되던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증언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적혀진 문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화자는 어떻게 "무"인 세계를 목도하는 "유"가 될 수 있는지

검증이 안되는 무한히 순환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일단 그런 관계로 세상의 시작, 창조는 검증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입니다
즉 창조과학은 창세기 그 자체가 아니라

창세기를 해석하는 하나의 틀입니다


2. 신앙은 과학적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주 고백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으신 뒤에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예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논증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미혼모가 생기면 아빠가 응당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과학적으로, 정자가 없이 난자 혼자 태아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망선고를 받고 무덤까지 들어가서 3일이 지났다면

특히나 심각한 고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죽었다면,

아주 과학적으로, 가망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서

여러분은 매주 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사 고문당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담대히 선포하지 못하시거나 그 믿음에 거리낌이 생기십니까?

왜 창조 이야기에선 유독 이렇죠?


"과학"이 규명해줄 수 없는 영역인데

여기에 과학을 들이밀면서 아주 심각한 왜곡이 생깁니다

성경에 나온 시적 은유적 표현을 문자적 과학적 정량적 이해로 받아들이는거죠

아주 간단히 성경속 창세기에 세상이 6일만에 창조된 서술이

지금 우리가 통용하는 시간인 144시간만에 만들어졌다는 서술과 동일한건가요?

과학의 잣대로는 동일하지만 신앙의 잣대로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은 과학적 잣대도 이어서 설명드리겠지만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풍성한 텍스트는

낮이 되고 밤이 되니 하루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준을 삼으면 지구 안에서도 하루가 다 다릅니다

극지방과 적도의 하루는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또한

창세기에 서술된 첫째날의 빛이 태양이 아닌 이상

지구가 다음날 생성되어 자전을 한다고 (양보)하더라도

태양을 보면서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 밤과 낮을 나누는 하루가 아니라

빛이 어떤 움직임 어떤 활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24시간으로 하루를 정의하는 것엔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과학"의 오류는 수도 없이 도사리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방식의 창세기 해석은 독이 됩니다


3. 창조과학은 그런 결과로 성경 해석의 오류를 극심화시킵니다

지금의 창조과학회가 하듯

창세기 1장의 창조과정과 2장에 서술된 창조의 과정을

한 쪽은 과학 다른 쪽은 고대 근동의 서술로 이해하면서 '끼워 맞추는' 형태를 갖고 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다른 서술에 대한 창조과학회의 주장


즉, 이렇게 어느 측면은 과학을 이야기하고
다른 측면은 고대 히브리어의 단어적 의미를 말하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역사적으로 저술 된 시기와 방법을 말하는 상황이면
해석법의 일관성도 없을 뿐더러
내가 믿고 싶은 쪽을 믿는거지 성경의 진짜 진술을 믿는게 아닌 결과로 나타납니다

목사님이 노아홍수의 증거를 보았다고 이번 글에 적으셨더군요

그랜드캐년에서 보여주는 창조과학회의 "프로그램" 압니다

지층을 보여주며 전지구적 대 홍수를 통한 격변이 일어난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 말입니다

한 때 창조과학빠였던 입장에서 모를 리가 있나요...;;;


그래서요?

노아의 홍수가 주는 메시지는 홍수가 전세계에 있었다에 방점이 있는게 아니라

그럼에도 하나님이 의인을 들어 인류를 다시 시작하도록 기회를 주셨다

무지개로 화해의 징표를 삼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약조하셨다

아닙니까?

결국 성경이 풍성한 텍스트와 은유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뒷전으로 미루고

과학적인 검증의 영역으로 낮춰 버림으로써

성경 자체가 전하려는 가장 강한 메시지를 희석시키기도 하고
그 자체가 오류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상황을 갖고 옵니다


뭐 더 길게 쓰자면 창조과학회를 공격하는 글이 될 소지가 다분한지라

이렇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카이스트 신문에 실린 창조과학에 대한 평가를 링크로 걸어놓겠습니다

창조과학,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가?

Posted by Room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