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예측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mp3라는 것은 01410 같은 알 수 없는 암호로 접속하던 모뎀유저들끼리 공유하거나
CD에 구워서 돌려듣는 형태의 공유가 이루어지던 시기였지요
아직 mp3p는 CDP에 비하면 크기가 작지도 용량이 크지도 않았으며 가격도 비싼 시기였기에
미래의 매체라는 생각들은 해도 전파가 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MP3의 등장은 워크맨으로 개념잡혔던 길에서 듣는 음악을 더욱 발전시켰고
10년간 쓸데 없는 저항(?)을 하며 동정론도 펼치고, 복사 방지법도 만들고, 음질 우선론도 펼쳐보던
업계는 이제는 이런 변화에 순응하는 분위기입니다
상품들을 제공하려는 의도이지요
문제는 음악을 제작하는 사람들이나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직까지는
음반 판매에서 나오는 손실을 보상할 만큼 MP3의 판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로 인해 산업자체가 많이 위축되어 지금은 기반이 없다 싶이 하니까요
100명이고 1000명이고 구입하지 않은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불법공유에 대하여 합법적으로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루트를 열어준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월 40곡 정액 회원입니다
40곡에 5000원이니 곡당 단가는 150원 안팎이 되겠습니다
기획, 생산, 제작에서는 더욱 비관적인 미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공개되었던 시기를 되짚어보자면 그 전까지의 음악제작은 스튜디오를 거치지 않고 어려웠습니다
하다 못해 간단하게 기타한번 자랑자랑 퉁겨주고 그 위에 보컬을 입히는
담백한 음악까지도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된 장비들을 갖춰놓고 소리를 담고 섞었어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그런 작업들의 대부분을 집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개념의 '홈레코딩'은
이는 프로페셔널했던 음악산업이 취미위주, 가내수공업형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매머드급 기획사들에게 미칠 정도의 영향력은 아직 없지만 작은 기획사들이나
특히 저희같은 CCM 업계, 인디쪽은 이제 기획사 vs 개인 제작자 의 구도는 거의 굳어졌습니다
제작자와 기획사 사이에도 구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능력을 요구하기에 이른것입니다
실제 엄청 과거의 음악은 악보 한장을 녹음실로 가져가 음악을 '제작'하는게 작곡가의 일이었다면
이제 자신의 악보를 자신이 음색 골라서 리듬만들어 넣고, 가능하면 연주까지 하고 믹싱도 완성해서
거의 완성된 음악의 형태로 가져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줄여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큰 스케일을 요구하는 음악은 갈수록 드물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것입니다
60년대 태어나신 분들은 아마도 학교(70년대)에서 단체관람으로 '극장 개봉'영화를 관람하신 기억이 있을겁니다
아마 대부분 공감하실 영화로는 '벤허'나 '콰이강의 다리' 정도이겠습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저는 중학교때(90년대) 단체관람 '뮤지컬 돈키호테'를 봤던 기억이 있구요
비슷한 개념으로 음악의 변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같은 코드가
음악은 향유해야겠고 구매력은 없는 이들이 단체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단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올 시기에 음악의 향유 방법은 어떠했을까요?
90년대의 테이프 가격은 4500원 선이었고 그게 당시 학생이었던 제 신분에는
가장 적절하게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 CD는 당시에 9000원에서 10000원정도였습니다
그리고 CD라는 매체는 절정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MP3의 불법공유라는 큰 벽을 만나서
시장도 제대로 이루어보지 못하고 사그러드는 매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 2002~2006년도 사이의 일이라고 기억됩니다
녹음되어 배포되는 음악은 그 이후로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많이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공연의 형태로 음악이 '소비'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소극적인 경우는 입장료가 되는 기본 음료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는 공연에서 부터 A석 부터 R 석까지 구비한
대규모 공연까지...국제적인 대형(몇 몇을 제외하곤 한물 갔다 싶은 가수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수들이
내한공연을 여는 요즘의 형국을 보자면 이러한 진단은 그리 많이 틀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과거 스트라이퍼가 젊음의 행진에서 라이브하던 'To Hell with the Devil'이 그 당시 초특급 내한가수였으니...
요즘 오는 내한가수의 빈도나 무게는 비교할 바가 못되는 것이 맞습니다
홍대의 인디씬이 주목받으며 공연이 활발해지는 1차 중흥기('드럭' 이라는 레이블을 기억하신다면 이게 1차 중흥기였다는 표현도 인정하실 듯)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음악이 '소비'되는 것에서 그 규모가 전과 비교해서 크게 늘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적절한 가격에 녹음된 음악을 가정 단위로 즐기는 시기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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