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6. 00:0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은 좀 더 간략한 버전으로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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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버전으로 보자면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자, 갈굼 당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종합하자면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장황버전인 마태복음에 있는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여기에선 단순히 가난, 기아, 고통, 핍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조금씩 무언가가 붙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그야말로 장황해졌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나타나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 라는 특징으로 이름 붙일 수 있던 것에 비해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복'받는 인물상은 좀 다릅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픔을 품고 있으며, 온유한 자 라고 표현하죠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심정적 이해를 나타낸다고 보이고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에 대한 순화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구절으로 보면 이게 행동강령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띕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팔복의 윤리....아닐까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제 생각엔 사회의 어떠한 상황을 만나도

그것보다 좀 더 의로운 것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찾아와도

그 안에 남아 있는 불의를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 말이죠


긍휼히 여기는...

공의로움은 사랑과 함께가지 않으면 법가의 사상같아지며

순자의 인간론 같아질 뿐입니다


이런 식의 대응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르겠지만

팔복은 분명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윤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윤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불평등 현상 해소를 이야기합니다
(라고 저는....마...그렇게 생각합니다...)


위의 본문에 생략되어 있는 누가복음의 간결버전 팔복의 뒷부분을 이야기하며 마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누가복음의 산상수훈은 8개의 복은 아니지만

복과 함께 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술프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였다

(표준 새번역)

Posted by Roomside